‘생태영성’이 ‘신성한 우주’에 감사하는 마음을 되살릴 수 있을까?
ㅡ “고대인들은 자연 속에서 삶을 기리는 법을 알고 있었다”
원문 링크 보기: https://www.theearthandi.org/post/can-ecospirituality-revive-appreciation-of-the-sacred-cosmos

영성과 생태학은 어떻게 결합되어 자연과 더 긴밀한 관계를 촉진할 수 있을까? 고대 사막의 기독교인들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기독교인들은 자연세계를 '정복'하고 '지배'하라는 성경의 명령을 넘어 어떻게 더 긍정적이고 조화로운 세계관을 갖게 될 수 있을까?
오리건주 포틀랜드대학교 신학·종교학부 부교수이자 학과장인 레이철 흴러(Rachel Wheeler) 박사는 자신의 저서와 대학 내 활동을 통해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있다.
그녀는 또한 고전 중국 의학, 심층 심리학, 생태영성, 신비주의를 통합하는 새로운 성인 교육 센터인 '하늘-사람-땅 연구원(Heaven Human Earth Institute)'의 공동 설립자이자 영성 담당 이사이다. 이 기관의 개원 행사는 2027년 7월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열릴 예정이다.
흴러 교수는 『사막의 딸들, 사막의 아들들: 기독교의 사막 전통 재고(Desert Daughters, Desert Sons: Rethinking the Christian Desert Tradition)』, 『생태영성 입문(Ecospirituality, An Introduction)』, 『근본적 친족 관계: 기독교의 생태영성(Radical Kinship: A Christian Ecospirituality)』 등 세 권의 저서를 집필하였고, 종교적 실천, 영성, 생태학, 윤리학, 심리학의 교차점에 주목하고 있다.

생태영성은 흴러 교수의 철학에서 핵심을 이룬다. 그녀는 <The Earth and I>와의 인터뷰에서 “생태영성은 신성한 우주 안에서 우리가 속해 있는 관계를 설명하는 방식”이라고 말하였다.
그녀는 '에코(Eco)'가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에서 유래한 것으로 '집'을 의미하며, '영성(spirituality)'은 “세상 속에서의 소속감이라는 맥락에서 신성하고 생명을 주는 것”을 강조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생태영성은 인류와 자연세계의 연결을 기리는 것이다.
생태영성은 명상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동시에 개인이 제도와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흴러 교수는 “우리 자신과 지구가 필요로 하는 급진적이고 지속적인, 시스템 전반에 걸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마음이 변화하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흴러 교수의 관점은 원주민의 지혜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전 세계의 땅에 뿌리를 둔 공동체들에는 이미 명백히 드러난 수많은 지혜가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 지혜는 내 관점과 생태영성에 대한 접근 방식에 정보를 제공하고 영감을 준다.” “나는 내 작업과 실천의 한 방법으로 원주민의 지혜를 단순히 차용하기보다는 의도적으로 감사하는 데 중점을 두려고 한다. 일부 원주민 사상가들이 제안한 대로 그리 멀지 않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내 자신의 땅에 뿌리를 둔 영적 실천의 계보를 탐구하고자 한다. 우리 중 일부가 가진 권력을, 그 권력을 누려보지 못한 이들과 공유하고 넘겨주며, 함께 다른 방식으로 그 권력을 지탱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바로 이 시대에 주어진 중요한 과제라고 느낀다.”

근본적 친족 관계
'근본적 친족 관계'라는 개념은 생태영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다양한 수준의 유전적 공유를 통해 모든 것들과 친족 관계에 있다. 새로운 과학적 이해를 통해 우리는 친족 계보를 꽤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나아가 별들보다 앞서 존재하며 별들을 포함하는 물질적 실체까지 추적할 수도 있다. 그 연결의 뿌리에 도달하는 것이 바로 이 친족 관계의 '근본'이 일깨워 주는 것이다.”라고 흴러 교수는 말한다.
이 개념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다른 사람이 이 새로운 과학적 이해를 '신성한 것'으로 지칭하든 그렇지 않든, 이는 신앙적 헌신이나 종교적 언어를 포함할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우리 모두는 생명을 주고 지탱해 주는 것, 우리가 타인에게 영양을 공급할 수 있도록 우리를 키우는 것을 신성하게 여길 수 있다.”고 그녀는 설명한다.
언어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구하다”, “보호하다”, “관리하다”, “창조물 보살핌”, “청지기직분”과 같은 용어들은 자연과 거리를 두고 자연을 지배한다는 의미를 내포할 수 있다. 반면 “친족 관계”, “상호 관계의 존재”, “사랑”과 같은 다른 단어들은 “자연의 나머지 부분과 함께 일하는 인간으로서의 지구인”이라는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소피아 소사이어티(The Sophia Society)’의 공동 창립자인 게리 앨런(Gary Alan)과의 팟캐스트 인터뷰를 들어보면, 흴러 교수가 생태영성과 근본적 친족 관계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아는 데에 도움이 된다.
부정적인 유산을 극복하기
기독교인으로서 흴러 교수는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안고 있는 해로운 종교 유산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 해결해야 할 과제란 인류 중심주의와, '내세'를 준비하는 것이 이 세상의 건강을 돌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믿음 등이다.
창조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라는 성경적 개념에 대해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종종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창조물의 본질적인 선함에 초점을 맞춘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오해하여 왔다.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다른 측면들은, 우리가 붙잡아 두기보다는 잊어버리는 편이 더 좋았을 요소들을 강조하고 있다.”
기독교의 사막 전통에서 얻는 교훈
흴러 교수는 3세기부터 5세기에 걸쳐 이집트, 팔레스타인, 시리아의 사막에서 살았던 사막의 기독교인들로부터 교훈을 얻는다. 그들은 금욕적이고 명상적인 삶을 살았으며, 이는 후대의 영적 전통에 영향을 미쳤다.
“사막의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우리 중 많은 이들이 갈망하는 방식으로 억압과 불의의 체제에서 물러나 있었다. 나는 그들의 자발적인 검소함과 소유에 집착하지 않음, 강요하지 않음에 관한 이야기를 사랑한다. 나는 우리가 여전히 그들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흴러 교수가 언급한 이야기 중 하나는 존 워틀리가 번역한 『장로들의 책』에서 찾을 수 있다. 사막의 기독교인 중 한 명인 아바 팜보의 가르침은 옷의 품질을 얘기한다. 수도사는 자신의 방 밖에 옷을 두고 나가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을 만한 종류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녀는 이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 세상에서 만연해 있는 물질주의나 소비주의로부터의 근본적인 초월을 우리에게 말해준다.”고 설명한다.
벽돌 하나를 두고 다투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의아해하는 두 장로의 이야기에서도 비슷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 중 누구도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다는 허구를 유지할 수 없었다.

흴러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독교의 사막 전통에서 표현되는 사막 영성은 한계를 근본적으로 받아들이고, 우리의 생태적 고향이 우리에게 요구하며, 심지어 필수로 여기는 한계 '안에서'—한계'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번영할 수 있는 성향을 기르는 것을 포함한다.”
실천이 필요한 '야생으로의 회귀(rewilding)'
흴러 교수는 사막의 기독교인들처럼, 개인에게 '야생으로의 회귀'란 “자연의 다른 존재들과 관계를 맺으며 우리의 삶을 그 자연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전자기기에서 벗어나거나, 무언가를 직접 길러보거나,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식단을 꾸리거나, 혹은 밖으로 나가 자연을 관찰하는 행동을 의미할 수 있다.
'대지에 관한 영적 탐구(terra-spiritual inquiry)', 즉 우리가 머무는 장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우리는 야생성이 살아있는 곳에서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흴러 교수는 “사랑과 애정, 보살핌은 분명 구체성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우리도 우리가 사는 장소로부터 사랑을 받는다고 느낄 때 그 장소를 더 돌보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그녀의 실천은 독서와 연구를 포함한다. 그녀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비건)이며 자동차를 타지 않는다. 이는 “나와 나머지 자연 사이의 친밀한 돌봄과 교감의 관계를 다시 키워 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녀는 “동반자와의 유대감과 소속감을 느끼며” 인근 공원을 산책한다.
이러한 실천은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있는 지구상의 존재로서 우리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촉진하여 경이로움, 아름다움, 기쁨, 호기심, 그리고 감사를 불러일으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자연과 어울리는 변화의 방향
만약 인간이 다른 종(種)들을 가족처럼 여기기 시작한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흴러 교수는 말한다. “우리는 공장식의 축산에서 동물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며, 상업농 업체들의 관행으로 땅을 황폐화시키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도시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야생동물들을 분리시키지 않고, 우리와 함께 사는 야생의 가족들을 수용하기 위해 도시를 더욱 철저하게 야생화해야 할 것이다.”
그녀가 결론적으로 말하였다. “내게 희망을 주는 것은, 수많은 생명체들의 '타자성' 속에서 더 깊은 소속감을 되찾으려고 애쓴다는 것, 그래서 인간과 공동체 사이에서 이미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야스민 프라부다스는 주로 비영리 단체, 노동조합, 교육 부문, 정부 기관을 위해 활동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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