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도덕적 풍경이다
- Jana Perez-Angelo
- 2월 20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16시간 전
ㅡ 경외심, 규율, 공동의 목적을 함양하는 동아시아 하이킹
*재나 페레즈-앤젤로(Jana Perez-Angelo)

오전 7시, 서울 상공에 해가 떠오를 무렵, 인근 북한산의 화강암 비탈은 이미 활기를 띠고 있다. 형광색 모자를 쓴 노인 등산객들은 트레킹 지팡이를 북소리처럼 두드리며, 상쾌한 소나무 향기 가득한 공기에 안개 같은 숨을 내뿜는다. 뻣뻣한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직장인들은 고르지 않은 돌길을 헤쳐 나가며 커피 컵을 꼭 쥐고 있다. 나무 휴게소에서 누군가 김밥을 풀어내며 바삭거리는 소리를 낸다. 또 다른 이는 밤이 되어야 쓸 헤드램프를 만지작거린다. 당장은 필요 없을 텐데도, 마치 준비 의식이 등반 자체의 일부인 양 어쨌든 들고 다니는 것이다.
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서울은 유리와 철골 건물들이 펼쳐져 아침 햇살 아래 반짝인다. 여기서는 도시가 멀게 느껴진다. 교통 소음은 사라지고 소나무 바늘 사이로 스치는 바람 소리, 먼 동네에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그리고 낯선 이들이 주고받는 속삭임 같은 인사 “안녕하세요”로 대체된다. 부츠가 바윗돌을 긁는 소리에 가끔 새가 깜짝 놀라거나 참새 떼가 갑자기 날아오르기도 한다. 안개가 들쭉날쭉한 능선을 휘감으며 황금빛 줄무늬로 햇살을 받아 모든 바위와 나무가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도시는 숨겨진 논리를 드러낸다. 서울은 펼쳐져 있지 않고 층층이 쌓여 있다. 한강 유역에 아파트 타워들이 군집해 있고, 접힌 종이처럼 솟아오른 능선들에 둘러싸여 있다. 고가도로는 바위산 주변을 빙글빙글 돌아간다. 경사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마을은 갑작스럽게 멈춘다. 마치 산이 도시의 성장에 대해 권위를 주장하는 듯하다. 땅이 주의를 요구하면 도시 구조는 조용히 순종하며 휘어진다. 인간은 자연 위에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한국은 국토의 거의 70%가 산악 지대다. 신성한 후지산, 다테산, 하쿠산을 포함한 일본의 산악 지대는 국토의 약 73%를 차지한다. 화산 지대인 태평양 불의 고리를 따라 늘어선 필리핀 역시 70% 이상이 산악 지형이다. 중국의 경우 약 33%가 산악 지대이지만, 티베트 히말라야를 중심으로 8000미터(2만6246피트)가 넘는 봉우리만 7개가 있다.
한국, 일본, 필리핀에서는 개발 가능한 토지가 귀중하다. 좁은 평야와 강 계곡에 도시가 밀집해 있다. 산등성이 사이로 고가도로가 구불구불 이어진다. 지형이 허락하는 곳마다 아파트 단지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산은 이웃처럼 아파트 창가에 바짝 다가서 있고, 고가도로를 따라 쭉 뻗어가며, 지하철 역을 감싸안는다. 이곳에서 등산은 단순한 여가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의식이자 해방이며, 훈련이자 정체성이다. 산길은 제각기 이야기를 전한다. 정상들은 저마다 교훈을 선사한다. 모든 발걸음은 관찰하고, 성찰하며, 연결하는 기회다.
동아시아 많은 국가에서 등산은 필수적인 여가 활동이며, 등산로는 도덕적 풍경이다. 등산은 여전히 강력한 운동 형태이면서도 경외심, 훈련, 공동의 목적을 길러준다. 등산로는 좁은 능선에서 등산객들로 인해 속도가 거북이 걸음처럼 느려질 때 인내를 일깨우고, 바람이 옷을 뚫고 스칠 때 겸손을 일깨운다. 그리고 단순히 “정상에 도달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걸었는가? 길을 가며 누구를 도왔는가?”라고 묻는 공동체 윤리를 가르친다.
필리핀: 아카얏 분독과 공동체의 경외심
필리핀에서 하이킹, 즉 아카얏 분독(akyat bundok)은 봉우리만큼이나 사람에 관한 것이다. 난초와 이끼로 우거진 숲을 지나고, 석회암을 타고 흐르는 시냇물을 건너며, 구름에 새겨진 뾰족한 봉우리 아래로 굽이치는 길. 등산객이 지나갈 때면 부츠는 검은 흙에 파묻히고, 뿌리가 발밑에서 얽히며, 곤충들은 느릿느릿 윙윙거린다. 등반은 경주가 아니라 웃음소리와 속삭이는 조언, 힘들어하는 동료에게 물을 건네거나 간식을 나누는 것으로 점철된 공동의 여정이다.

현지 가이드들은 단순히 길을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전한다. 그들은 고대 계단식 논을 가리키고, 신성한 숲에 깃든 정령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간과 땅 사이의 섬세한 균형을 가르친다. 산은 스승이자 거울이다. 인내와 끈기, 타인에 대한 존중을 비춰 보인다.
나이, 부상, 상황은 산행의 장벽이 되지 않는다.
몇 년 전 노마드테라 크롤러스를 위해 제작된 영상에서 필리핀 등산객 피아 솔론은 무릎 통증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회상한다. “이 등반은 매 걸음이 중요하다는 걸 상기시켜 줬다. 숨을 쉴 때마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다시 생명을 느끼고, 능력이 있다고 느끼고,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또 다른 노장 등반가 에드윈 가티아는 세대 차이에 대해 이렇게 반추했다. “기본적으로 가장 큰 차이는 우리 시절에는 모험의 요소가 훨씬 더 많았다는 점이다. … 미지의 세계를 향한 탐구와 그에 따른 흥분이 있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재미를 즐기고 모험보다는 레크리에이션으로 등반한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계속 등반할 거다. … 옛말에 등반가는 죽지 않고 술만 마신다고도 했다.”고 영상에서 말했다.
이 경험은 단순한 격려를 넘어 끈기와 공동체 의식, 그리고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철학이 된다. 산을 오르든, 부상에서 회복하든, 혹은 단순히 숲속 공기를 마시든, 필리핀의 산악인들은 매 걸음마다 이를 실천해 나간다.
대한민국: 신성한 봉우리, 국가 정체성, 그리고 규율
한국에서 등산은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주말이면 등산로가 화려한 색채로 가득하다.—네온 재킷, 파스텔 색상의 바이저, 바람에 펄럭이는 스카프. 산은 신성한 곳으로, 산신령이 깃든 곳이며 운명을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기운인 풍수지리와 연결되어 있다. 많은 등산객이 정상을 향해 달려가지만, 속도를 늦추고 관찰하며 성찰하고 길 자체를 존중하는 움직임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 국립공원공단의 강동익씨는 비디오 영상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은 도시의 번잡함을 벗어나려고 등산을 하지만, 정상에 도착하면 너무 많은 사람들로 인해 스트레스가 해소되기보다 새로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해결책은 '슬로 피킹(느린 등산)'이다. 더 천천히 걸으며 자연을 느끼고, 정상에 급히 오르기보다 계곡을 바라보는 것이다.”
영상 속 익명의 한국 등산객은 개인적인 견해를 덧붙인다. “치유받으려면 [산에] 올라와야 한다.” “정말 기분이 좋아진다.”고 그녀는 말했다.
붐비는 등산로에서도 삶의 철학은 조용한 제스처로 드러난다: 사원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 바위를 넘는 등산객을 돕기 위해 내민 손, 가파른 경사면에서 함께 터지는 웃음. 멈춤은 걸음만큼 중요하다. 도시 생활 근처에서 하이킹을 하면 공기가 다르게 느껴진다. 기대감으로 더 무겁지만, 가능성으로 더 가벼워진다.

일본: 삼림욕과 마음챙김의 산
일본에서 하이킹은 마음챙김과 계절 변화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과 뗄 수 없는 관계다. '삼림욕'이라는 신린요쿠(森林浴)는 참가자들이 숲 환경에 완전히 몰입하도록 장려하여 스트레스를 줄이고 전반적인 건강을 증진시킨다.
일본 산림의학회 회장인 칭리 박사는 저서 『숲속 목욕: 나무가 건강과 행복을 찾는 법』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직장의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숲속 목욕을 하는 것이다. 나는 점심시간마다 삼림욕을 한다. 숲이 없어도 된다. 작은 녹지공간이면 충분하다. 커피잔과 휴대폰은 두고 천천히 걷는다. 운동할 필요 없이 자연에 감각을 열어주기만 하면 된다. 기분이 좋아지고 긴장과 불안이 줄어들며 하루 종일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일본의 산책로는 정성껏 관리되며, 하이킹은 봄의 벚꽃부터 불타는 듯한 가을 단풍까지 계절의 의식과 맞물려 진행된다. 걷기는 명상이 되며, 자연과 사회의 리듬에 자신을 맞추는 수행이 된다. 모든 발걸음은 의도적이며, 모든 숨결은 소나무, 삼나무, 축축한 흙의 향기에 맞춰진다.
숲의 치유력은 이러한 마음챙김 실천을 보완한다. 삼림욕의 선구자인 칭리 박사는 숲이나 도시 공원에서 단 2시간만 머물러도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추고 혈압을 감소시키며 면역력을 강화하고 수면을 개선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삼림욕은 우울증을 완화한다. 집중력을 높이고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도시 공원을 방문해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짧은 방문만으로도 많은 이로움을 얻을 수 있다. 숲과 교감하고, 나무와 주변 공기에 스민 생명을 느끼는 것이 핵심이다.”
일본에서 숲은 단순한 풍경 그 이상으로 인식된다. 숲은 스승이자 치유자이며 성찰의 공간이다. 여기서 하이킹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삶 그 자체와의 마음챙김을 통한 교류이다.
중국: 도교와 유교의 영향
중국의 산은 한국, 일본, 필리핀에 비해 국토 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훨씬 작지만, 스승이자 사원이며 자아를 비추는 거울로 여겨진다. 안개 낀 숲속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에는 소나무, 삼나무, 대나무 향기가 공기 속에 배어 있으며, 비가 온 뒤에는 발밑의 흙이 쫀득쫀득하다. 시냇물은 바위를 뛰어넘고, 숨겨진 연못에서는 개구리가 운다. 새들은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며 등산객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침묵에 빠지게 한다. 나무 뿌리들은 길 위로 뱀처럼 뒤틀려 있고, 바람은 멀리서 들려오는 사찰 종소리의 희미한 메아리를 실어 나른다.
수세기 동안 도교와 유교 전통은 산을 도덕적·영적 수양의 장으로 여겨왔다. 덕성을 연마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절제를 강화하는 공간으로 삼은 것이다. 은둔, 단식, 명상은 몸과 마음, 영혼을 조화시키는 수행이다. 등반 그 자체가 스승이 되어, 매번 굽이진 길에서 인내심과 겸손함, 깨달음을 시험한다.
한 도교 수행자는 2025년 여름 수행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숲속을 천천히 걸으며 어린 솔잎을 씹고 산의 기운을 흡수하니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맑아졌다. … 이는 도피가 아니라 세상과 자신과의 재연결이다.”
이 수행자는 3일간의 단식 수련 기간에 대해 덧붙인다. “비는 옷을 적셨지만 더 깊은 무언가를 씻어내는 듯했다. 마음은 가벼워지고 맑아졌다. 남은 것은 오직 우리와 이 산, 이 비, 이 바람, 이 안개뿐이었다.”

우당산, 태산, 오대산 등 중국의 신성한 봉우리들은 인간의 예술성이 자연의 아름다움과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계단식 길은 사찰, 탑, 향기 가득한 신전을 지나며 아침 안개 속에서 종소리가 희미하게 울려 퍼진다. 무술 수련생들은 숲의 리듬과 조화를 이루며 경사면에서 자세를 연습한다. 중국 글로벌 텔레비전 네트워크(CGTN) 진행자 자오양은 이렇게 관찰한다. “근본적인 사상은 모든 생명체가 조화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도교는 육체적 욕구와 저급한 욕망을 초월하여 자신을 수양하고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궁극적으로 영적 불멸을 이루는 것에 관해 말한다.”
현대의 등산은 도시 접근성과 신성한 보존 사이의 균형을 맞춘다. 방문객들은 등반이 정복이 아닌 교감임을 상기하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삐걱거리는 대나무 줄기, 미끄러운 돌, 안개 소용돌이 하나하나가 주의를 기울이고, 성찰하며, 조심스럽게 걷도록 부드럽게 촉구한다.
길은 스승이다
동아시아의 산은 결코 단순한 장애물이나 풍경이 아니다. 산은 스승이다. 발밑의 돌 하나, 스치는 바람 한 줄기, 길 위에서 나누는 웃음과 도움의 손길 하나하나가 인내와 용기, 공감의 교훈을 선사한다. 길은 몸을 단련시키고 마음을 깨우며, 인간을 자신보다 더 큰 존재에 뿌리내리게 한다. 인생을 헤쳐 나가는 법을 가르친다. 신중히 걸으며, 먼저 오른 이가 다른 이를 끌어올리고, 세상에 대한 배려를 잃지 않는 법을 일깨운다.
등산객들이 도시로 돌아올 때면, 그들은 산의 리듬, 숲의 느린 숨결, 바윗길의 절제된 등반, 신성한 봉우리의 경건한 고요함, 그리고 남은 삶을 걸어가는 방식을 안내하는 내면의 지도를 함께 가져온다. 산은 움직이지 않고 야망에 무관심할지라도, 귀 기울이는 이라면 누구나 변해서 돌아온다. 모든 정상은 목적지가 아니라 살아 있는 교실이다. 세상이 그 인내심 넘치고 우뚝 선 방식으로 가르칠 때 사람이 될 수 있는 최고의 모습을 비추는 곳이다.
*재나 페레즈-앤젤로는 덴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이자 다학제적 크리에이티브 및 디지털 전략가로, 브랜드 스토리텔링과 목적 중심 콘텐츠에 열정을 쏟고 있다. 그녀의 작업은 『렐러번트 매거진(Relevant Magazine)』, 『미디엄(Medium)』, 『믿음의 생활 (Faithful Life)』 등에 소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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