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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 정책

나의 주장: '세계관 위기'가 가장 큰 환경 위협이다

최종 수정일: 6시간 전

ㅡ 종교 간 지도자들은 생태적 도덕성에 대한 세계적 합의 도출에 힘을 모아야 한다






2025년 10월 3일 바티칸에서 교황 레오 14세를 만난 이야드 아부모글리 박사. 사진 제공: 이야드 아부모글리
2025년 10월 3일 바티칸에서 교황 레오 14세를 만난 이야드 아부모글리 박사. 사진 제공: 이야드 아부모글리


지난 수십년간 인류는 현재 지구와의 관계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에 충분한 과학적 증거를 확보해 왔다. 우리는 기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다. 생물 다양성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토양과 산림, 강, 바다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전례 없는 과학적 지식에도 불구하고 환경 파괴는 계속되고 있다.


이는 불편한 의문을 제기한다. 과학이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주었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방향을 바꾸지 못하는가? 환경, 정책, 신앙의 교차점에서 40년 넘게 일해 온 나는 그 해답이 정보의 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의 위기, 즉 내가 '도덕적 책임'의 위기라고 부르는 데에 있다고 믿게 되었다.


환경 위기는 단순히 생태적 위기만이 아니다. 이는 가치의 위기이자 의미의 위기이며,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생명망 속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이해의 위기이다.



자연 세계의 상품화


수세기 동안 현대 문명은 주로 경제적 성장, 소비, 생산, 축적을 기준으로 성공을 측정하는 유물론적 세계관에 의해 크게 형성되어 왔다. 이러한 세계관은 놀라운 성과를 낳았다.


그렇다. 이 세계관은 과학, 기술, 의학, 그리고 인간의 번영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동시에 자연은 주로 인간이 이용하기 위한 자원으로 존재한다는 숨겨진 전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숲은 목재가 되고, 강은 물 공급원이 되며, 동물은 상품이 되고, 땅은 자산이 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지구는 거대한 창고가 되어 버린다.


이러한 관점으로 바라볼 때, 착취가 당연한 일이 되고, 보호는 부차적인 문제로 밀려나며, 관리 책임은 선택 사항이 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 패러다임의 한계를 목격하고 있다. 인류가 직면한 생태 위기는 우리에게 더 깊은 질문을 던지게 하고 있다. 만약 지구가 단순히 자원의 집합체 그 이상이라면? 만약 가치를 오로지 금전적 가치로만 측정할 수 없다면? 만약 인간의 번영이 자연에 대한 지배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에 달려 있다면?

이러한 질문들은 많은 학자들이 '후기물질주의적 세계관'이라고 묘사하는 방향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 세계관은 의미, 윤리, 영성, 관계, 연민, 책임이 인간 발전에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그 핵심임을 인식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신앙 전통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신앙이 과학을 대체하거나 기술적 해결책을 제공하기 때문이 아니라, 신앙이 과학만으로는 다룰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차원을 다루기 때문이다. 과학은 생태계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알려줄 수 있다. 신앙은 생태계가 왜 중요한지 이해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과학은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할 수 있다. 신앙은 이를 줄이려는 도덕적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다. 과학은 상호 의존성을 설명할 수 있지만, 신앙은 상호 의존성에 대한 인식을 책임감으로 전환할 수 있다.



2025년 10월 3일 바티칸에서 열린 환경회의에서 아부모글리 박사가 찰스 3세 국왕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이야드 아부모글리
2025년 10월 3일 바티칸에서 열린 환경회의에서 아부모글리 박사가 찰스 3세 국왕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이야드 아부모글리

유엔환경계획(UNEP)에서 근무하는 동안 나는 이러한 변화의 힘을 직접 목격해 왔다. 내가 처음 환경 문제에 대해 신앙 공동체와 협력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 심지어 유엔 내부에서도 종교가 지속 가능성 분야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환경 정책은 과학자, 경제학자, 정부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신앙 공동체는 글로벌 환경 논의에서 거의 배제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이 종종 간과하는 무언가를 보았다. 종교 전통은 기관이나 정책만으로는 이루기 어려운 방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다가간다. 종교는 가치를 형성하고,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도덕적 공동체를 만들어낸다. 또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뿐만 아니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도 제시한다.



과학과 종교의 가교 역할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가 환경 과학과 종교적 지혜 사이에 가교를 놓게 했다. 가장 고무적인 사례 중 하나는 2023년 아부다비에서 내가 주최한 '양심의 합류(Confluence of Conscience)' 정상회의였다. 그 회의에서 다양한 종교 전통을 가진 종교 지도자들은 신학을 논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지구에 대한 공동의 도덕적 책임을 확인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대화가 교리에서 책임으로 전환되자마자 차이가 얼마나 빨리 사라졌는지였다. 서로 다른 종교 전통은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 어떤 이들은 '청지기 정신'을, 다른 이들은 '신탁 관리'를, 또 다른 이들은 '신성한 상호 연결성'을 언급했지만, 그 메시지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지구는 우리가 착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지구는 우리가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다.


이 경험은 깊은 교훈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세계의 다양한 종교 전통은 신앙면에서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인류를 더 지속 가능한 미래로 이끌 수 있는 윤리적 원칙들, 즉 겸손, 연민, 정의, 절제, 책임, 감사, 미래 세대에 대한 배려를 중심으로 수렴한다. 이 모든 것은 단순한 종교적 가치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생태학적으로도 필수적인 요소다.


환경 거버넌스에서 윤리의 역할에 관한 나의 연구에서, 나는 환경 문제를 법률, 규제, 또는 경제적 인센티브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물론 정책도, 과학도, 기술도 필수적이지만, 윤리적 토대가 없다면 그것들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모든 환경 관련 결정은 궁극적으로 도덕적 선택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누가 이익을 얻는가?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가? 우리는 미래 세대에게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리고 다른 생명체에 대해 우리는 어떤 의무를 지고 있는가?


윤리는 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윤리가 없다면 거버넌스는 효율적일 수는 있지만 방향성을 잃게 된다. 윤리가 있을 때 비로소 거버넌스는 목적을 갖게 된다.



생태학, 영성, 그리고 정책


아마도 가장 중요한 환경적 과제는 외부가 아니라 우리 내부에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큰 변화는 기술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심리적, 영적인 변화일 수도 있다. 이러한 점은 코네티컷대학교와 함께 '지구를 위한 마음챙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특히 분명해졌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하지만 심오한 아이디어를 탐구했다. 바로 환경 위기가 우리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방식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자신을 자연과 분리된 존재로 여길 때 자연을 착취하는 일이 더 쉬워진다.



케냐 나이로비에 위치한 유엔환경계획(UNEP) 본부에서 열린 제4차 유엔환경총회에서 종교 간 참가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이야드 아부모글리
케냐 나이로비에 위치한 유엔환경계획(UNEP) 본부에서 열린 제4차 유엔환경총회에서 종교 간 참가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이야드 아부모글리


우리가 서로 연결된 생명체계의 일부로서 자신을 경험할 때 돌봄은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마음챙김은 자각력을 키운다. 자각은 공감능력을 길러준다. 공감은 책임감을 강화하며, 책임감은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는 추상적인 철학이 아니다. 환경 파괴를 부추기는 많은 행동이 소비, 경쟁, 단절이라는 무의식적인 습관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이는 실질적인 함의를 지닌다. 따라서 내면의 변화와 외부의 변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환경 운동은 종종 시스템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 왔다. 종교 전통은 지속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마음의 변화도 필요함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오늘날 인류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놀라운 과학적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정교한 기술을 갖추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환경적 위험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혜다. 지식과 가치를 조화시키는 지혜, 권력과 책임을 조화시키는 지혜, 그리고 진보와 목적을 조화시키는 지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윤리, 과학, 정책의 연계가 그토록 중요해진다. 과학은 '무엇이 있는가'를 알려준다. 윤리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정책은 이 두 가지를 집단적 행동으로 전환한다.

이 세 가지 차원 중 어느 하나도 단독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윤리가 결여된 과학은 인간적 가치에서 멀어질 수 있다. 과학이 결여된 윤리는 현실과 단절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둘 모두가 결여한 정책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가 함께 작용할 때 비로소 변화를 이끄는 힘을 발휘한다.


이러한 통합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기회 중 하나이며, 신앙 공동체는 이 과정에서 독특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관찰자나 비평가가 아니라 생태적 의식을 함양하는 파트너, 도덕적 리더십을 육성하는 파트너, 그리고 지구가 단순한 경제적 자산이 아니라 신성한 신탁이라는 사실을 인류에게 상기시키는 파트너로서 말이다.


착취에서 보호로의 전환은 궁극적으로 자연과의 관계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를 바꾸는 문제다. 우리가 더 큰 생명 공동체의 일부임을 인식할 때 보호는 더 이상 희생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존재를 표현하는 방식이 된다. 종교 전통은 수세기 동안 이 지혜를 보존해 왔다. 이제 과학도 이를 점점 더 확증하고 있다.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이를 정책이나 제도, 그리고 우리의 일상생활로 구현해 내는 것이다.



신앙 공동체 내의 생태적 부흥


지난 30년 동안 놀라운 변화를 목격하며 나는 희망을 얻었다. 내가 이 여정을 시작했을 때 종교 공동체는 환경 논의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늘날 그들은 생태적 책임을 촉구하는 가장 역동적이고 영향력 있는 목소리 중 하나가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교회, 모스크, 사원, 수도원, 원주민 공동체, 종교 기반 단체들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동원하여 피조물을 돌보고 있다.



2023년 '양심의 합류(Confluence of Conscience)' 정상회의에서 지구온난화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힘을 합친 종교 지도자들. COP28/위키백과 CC BY 4.0
2023년 '양심의 합류(Confluence of Conscience)' 정상회의에서 지구온난화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힘을 합친 종교 지도자들. COP28/위키백과 CC BY 4.0

이는 인류에게 희망을 준다. 왜냐하면 환경 위기가 단순히 탄소나 생물 다양성, 오염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인류가 이해하기 시작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이는 의식의 문제이다. 가치관의 문제이다. 우리가 어떤 문명을 지향하느냐의 문제다.


그리고 우리가 신앙 전통이 주는 도덕적 지혜와 과학의 통찰력, 그리고 건전한 거버넌스의 도구를 활용할 수 있다면, 인류가 더 이상 자신을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 지구의 관리자로 인식하는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착취가 보호로 바뀌는 미래, 물질적 진보와 도덕적 진보가 균형을 이루는 미래, 개발이 얼마나 축적했느냐만이 아니라, 얼마나 보존했느냐의 미래,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지구를 돌보는 일이 단순한 환경적 의무가 아니라 신성한 책임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재발견하는 미래이다.

 


*이야드 아부모글리(Iyad Abumoghli) 박사는 이슬람의 가르침과 환경보호 가치를 연결하여 모든 사람이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보호하도록 촉구하는 단체인 알 미잔(Al Mizan)의 창립자이자 의장이다. 또한 유엔환경계획(UNEP)의 '지구와 신앙 연합(Faith for Earth Coalition)' 전 이사이자 '통합 종교 이니셔티브(United Religions Initiative)' 자문위원회 위원이다. 이 글은 2026년 6월 '평화를 위한 국제미디어협회(International Media Association for Peace)'가 주최한 웨비나에서 아부모글리 박사가 발표한 연설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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