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의 재생농업 프로그램
- Gordon Cairns
- 8월 22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6시간 전
ㅡ 흙과 퇴비로 식물을 가꾸며 미래의 신앙을 키운다

수 세대에 걸쳐 신학교들은 교실, 도서관, 예배당에서 미래의 성직자들을 양성해 왔다. 오늘날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의 '파미너리(Farminary, 경작프로그램)'에서는 가장 중요한 교훈 중 상당수가 퇴비더미, 채소밭, 닭장, 그리고 함께 나누는 식사 자리에서 시작된다.
뉴저지에 위치한 이 학교의 '경작프로그램(Farminary)'—”농장(farm)”과 “신학교(seminary)”를 합친 말—은 재생 농업과 영적 형성, 생태적 청지기 정신, 공동체 생활을 통합함으로써 신학교육을 새롭게 재구성하고 있다.
경작프로그램 '파미너리'는 또한 치유를 위한 뜻밖의 모델을 제시한다. 학생들은 신학뿐만 아니라 건강한 토양, 계절의 리듬, 식량 정의, 안식일 준수가 미래의 신앙 지도자들로 하여금 사역을 이해하는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도 배우게 한다. 이 프로그램은 환경 관리를 좁은 범위의 관심사로 취급하기보다는, 피조물을 돌보는 일을 영적 삶의 핵심으로 제시한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은 땅과의 관계, 그리고 서로 간의 관계를 재발견하도록 초대받는다.

신앙과 지구의 부활
환경적 불안, 고독, 그리고 끊임없는 생산성이 특징인 이 시대에, 땅을 일구는 일이 신앙 공동체와 지구 회복의 길로 이어질 수 있을까?
'파미너리'의 설립자이자 소장인 네이선 스터키(Nathan Stucky) 목사가 항상 그렇게 믿어온 것은 아니었다. 그는 가족과 함께 미국을 가로질러, 미국에서 두 번째로 유서 깊은 신학교인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8년간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흙과 씨름하던 생활을 뒤로하고 당연히 신학적 질문들과 씨름하는 삶으로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
“2007년에 농사를 그만두고 신학교 학생이 되었을 때, [농사와 신학]이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지질학적 상상력이나 직업적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는 일이었다.”고 그는 줌(Zoom) 통화를 통해 『The Earth and I』에 말했다.

스터키 목사는 캔자스의 한 농장에서 자랐으며, 직접 농부가 되기 전에는 청소년 사역에 종사했다. 그 시절이 바로 그가 땅과 농사, 그리고 기독교 신앙에 대한 사랑을 모두 심어놓은 시기였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자연 세계와 하나님 말씀 사이의 연관성이 그에게 명백해졌다. '파미너리'에 대한 아이디어는 바로 이러한 초기 생각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신학 공부를 마무리하던 무렵, 스터키 목사는 이미 켄터키에 있는 농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상태였기에, '파미너리'에 대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신학교 총장에게 제안했다.
여러모로 이상적이긴 했지만, 켄터키의 그 농장은 프린스턴에서 차로 10시간이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프린스턴 신학교에 약 85,000㎡(21에이커) 규모의 자체 농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곳을 활용해 미래의 신앙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교육방식을 정립할 수 있게 되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토지를 확보한 것은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한 것이었지만, 과거 잔디 농장으로 사용되어 고갈된 땅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우리는 텃밭을 가꾸고 싶었지만 표토가 전혀 없었다.”고 스터키 목사는 설명했다.
그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대해 설교했던 내용을 인용하며, 네 가지 종류의 땅에 씨를 뿌리는 농부의 이야기와 '파미너리'의 땅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주었다.
“이 이야기를 더 이상 세 번의 실패와 한 번의 성공으로만 읽게 할 수 없다. 이 이야기는 수많은 세대와 끝없는 삶과 죽음, 그리고 새로운 생명의 순환을 아우르는 하나의 긴 이야기로 보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오늘날 가장 생명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곳과 공간에서도 풍성한 수확을 가져올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고 스터키 목사는 말했다.
프린스턴 농장의 물리적 땅은 이전 관리자들의 '상처'를 안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우리 세상에서 이러한 관계에 대한 너무 많은 규범들이 착취, 고갈, 수탈이라는 동일한 전제 위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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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싱그럽고 건강한 성장세는 이 옛 잔디 농장의 착취, 고갈, 수탈의 시대가 끝났음을 보여준다. 사진 제공: 프린스턴 신학대학원
이 땅이 주는 교훈은 '파미너리'가 이곳에서 일하는 모든 이에게 유익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신앙 지도자들의 성장
'파미너리'가 운영되는 동안, 프로젝트 책임자로서 스터키 목사는 자신과 하나님의 말씀 사이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나는 [지금] 12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기독교 경전을 읽는다. 단순히 농장에서, 혹은 숲속에서, 또는 개울가에서 성경을 읽을 때, 문득 이 모든 것이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들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자연 세계에 대한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파미너리'의 설립 취지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였다. “파미너리의 사명은 궁극적으로, 세상에서 잘못된 일들의 상당 부분이 인간이 스스로를 일종의 위계 구조 최상위에 위치시켰기 때문임을 인식하는, 새로운 유형의 신앙과 신앙 지도자를 양성하는 데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위치를 재조정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재-위치화는 '파미너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이 땅에서는 토마토, 호박, 콩을 재배하고 닭을 기르지만, 이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이 농장에서 색다른 유형의 지도자를 키워내고자 한다. 나 역시 개혁되거나 새롭게 형성되어야 할 지도자들의 대열에 나 자신을 포함시킨다.”고 스터키 목사는 말했다.

“우리의 스승은 나무와 곤충, 흙, 물을 끊임없이 새롭게 창조해 내는 영이다.”고 그는 덧붙였다.
신학 및 생태학 석사 과정 학생들에게는 첫날부터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강조된다. 학생들은 친구가 될 나무를 하나 찾아 그 나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면밀히 관찰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이 활동은 우리가 비인간 존재들에 대해 우리 자신을 어떻게 재구성할지를 탐구하는 과정이다.”

모든 활동이 이렇게 온화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스터키 목사의 동료 중 한 명은 '식량 윤리 신학' 강의를 담당하고 있는데, 이 수업에서는 농장의 닭들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 닭들을 도축할 때가 되면 학생들은 최소한 농장에 있어야 하며,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도축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은 그 닭들을 주 요리로 삼아 함께 준비한 식사를 나눈다.
“우리는 도서관이나 전통적인 강의실에 앉아 음식의 신학과 윤리에 관한 텍스트를 읽으며 유익한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스터키 목사는 말했다. “하지만 농장이 주는 힘은 그 주제를 자명하게 만들어 준다. 이는 단지 허공에 떠도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살과 피가 있는 현실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생명체들의 실제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독특한 신학교 졸업생들답게, 그들의 진로는 반드시 목회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식량 안보나 식량 정의를 다루는 단체를 포함한 비영리 단체에서 일한다. 한 졸업생은 모든 결정이 반드시 종교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의 가치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조경 건축가로서의 이전 직장으로 돌아갔다. 또 다른 졸업생은 교회 건물을 잃고 이제는 거의 전적으로 야외에서 예배를 드리는 장로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안식일을 지키기
'파미너리'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만큼이나 '안식'에 관한 곳이기도 하다.
『휴식과 씨름하기: 청소년들에게 안식일의 선물을 발견하도록 초대하기』의 저자인 스터키 목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젊은이들에게 삶은 압력솥과 같다. 성취를 멈추지 말고, 생산을 멈추지 말고, 소비를 멈추지 말라는 압박이다. 안식일은 그런 압박에서 벗어나는 해방이다. 사람과 땅의 고갈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고갈은 창조주께서 피조물에 바라시는 바가 아니다.”

지속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파미너리'의 영향력이 뉴저지의 대학원 농지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스터키 목사는 그 경계를 넘어 미래의 관계를 구축하는 데 열의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 10년 동안 가장 흥미로운 일은 다양한 학문 분야와 여러 기관에 속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흙을 만지고 퇴비더미를 만지며, 무엇이 가능한지, 그리고 세상을 어떻게 재구상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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